일제침략 하에서도 일제와 타협하면서 그와 같은 근대화론을 견지하려는 입장입니다. 이는 다분히 봉건적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일제의 침략·침탈에 협조하거나 묵인하는 다수 부르조아 즉 기업인, 관료가 중심이 된 움직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일본이라는 제국주의국의 침략 하에서 조선인이
업학교도 전문교육학교로 격상된다.
제 3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된 1938년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하게 된 일본의 상황이 드러난다. 일제는 인력동원 및 전시 물자 수급을 위하여 실업교육을 본토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게도 더욱 넓힌다. 그리하여 1차 교육령기에서 2차 교육령기 때 중등
일제의 식민지 경제 정책 때문에 광업 부분의 개발이 일본제국주의의 독점자본의 요구에 의해서만 수행되었으며 농업정책은 미곡을 비롯한 곡물의 수탈을 목적으로 시행되어 왔었기 때문에 농업은 공업의 기초원료 로서의 유기적 관계를 갖지 못한 채 발달되어 왔다. 일제하의 전기간에 대한 산업별
일제의 조선 공업통제와 생산력 확충」,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 1995, p335
조선과 일본은 정밀, 기계, 병기 등의 공업에 집중하며 이 산업들의 성장을 고도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만주가 중화학 공업의 육성지로 형성되었고 중국이 원료공급지로 성격이 규정되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시
업이나 상업에 투자 할 어떤 동기도 부여받지 못했다. 상업과 공업으로 성공한 몇 안되는 사람들은 거의 일본과 결탁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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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식민과 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 일제시대)
1. 식민지수탈론
식민지 수탈론은 민족자본과 한국 경제의 '식민지적 파행성'에 주목한다.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으로 이어졌다. 곧, 내재적 발전론의 연구는 조선후기의 상공업 발달 등에서 초기 자본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일제식민지시기를 겪으며 억압되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시기에 다양한 근대화의 지
식민지적 재편
1) 외교권 박탈, 군대 폐지
2) 사법제도의 재편과 지배
(1) 갑오개혁기 사법제도
- 행정과 사법의 분리, 심급제의 도입, 중세적 형벌제도의 개혁 등에 초점.
- 기본법으로 1895년 4월 「재판소구성법」 제정·공포.(재판소로는 지방재판소·한성재판소·개항장재
일제는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했는데 총독부는 전시하 농업부문의 갈력한 관제단체인 농회에 농산물의 생산·집하·배급 통제 일부를 분담시켰지만 농회는 공출량을 직접 할당하지는 않았다. 이는 공출량 할당에 있어 최소한의 '자율'도 인정하지 않은 식민통치의 일환이었다. 또한 금융조합은 조선
업부문의 실질 국내 총생산이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계량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미곡의 우량품종 보급률이 1918년 48%에서 1926년에는 73%에 도달했다는 사실과, 1920년 1300만석, 1930년대 초반 1900만석, 1930년대 후반 최고 2700만석의 미곡생산량 증가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 식